너와 내가 만든 세상 제주

11. 숙고의 방 책소개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Ruth Bader Ginsburg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1933년 3월 15일 ~ 2020년 9월 18일)는 미국의 법조인으로 미국의 대법관을 지냈다. 미국 대통령 빌 클린턴이 연방 대법관으로 지명할 당시 합의를 이끌어내는 중도파로 평가받았다. 보수화되어가는 연방대법원의 진보적인 축에 속했다. 샌드라 데이 오코너에 이은 사상 두 번째 여성 연방 대법관이며 첫 번째 유대인 여성 연방대법관이다. 미국 대 버지니아주, 옴스테드 대 L.C.(영어판), 미국지구의벗 대 레이드로환경서비스(영어판), 뉴욕주 셰릴시 대 뉴욕주 오나이다 원주민(영어판)와 같은 유명한 판결문(다수의견)을 작성하였다. 법조인 경력의 상당한 부분을 성평등과 여성의 권리증진에 힘썼으며, 미국시민자유연맹(ACLU) 변호사로서 이와 관련한 여러 연방 대법원 판결을 승소로 이끌어냈다. 1970년대 그는 ACLU의 자원봉사변호인, 이사, 법문자문위원 등으로 일했다. 1980년부터 1993년까지 미국 연방 컬럼비아 항소구 항소법원 판사로 재직하였다. 2006년 오코너 연방 대법관의 퇴임과 2009년 소토마요르 연방 대법관 임명 사이의 기간 동안 그는 유일한 여성 연방 대법관이었다. 이 기간 동안 작성한 단호한 소수의견은 법조인들과 대중의 주목을 받았으며, 2007년 레드베터 대 굿이어 사건의 소수의견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이 사건의 소수의견은 노동자가 임금차별소송에 승소하기 쉽도록 한 2009년 릴리 레드베터 임금평등법 제정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출처】https://ko.wikipedia.org/wiki/루스_베이더_긴즈버그


망명과 자긍심 Exile and Pride

『망명과 자긍심』은 1999년 초판이 발간된 이후 2009년과 2015년에 두 차례 개정을 거치면서 오랫동안 읽혀온 책이다. 영미권에서는 퀴어 페미니즘 장애학의 가장 중요한 텍스트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으며, 장애학, 퀴어학, 여성학, 젠더학 수업의 필독서로 쓰이고 있다. 또 「옮긴이 후기」에서는 ‘크립’, ‘프릭’, ‘트랜스’, ‘젠더퀴어’ 등 책에 등장하는 소수자 관련 용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덧붙여서 독자의 이해를 돕고자 했다. 이 책은 한국에서도 다양한 운동 들 간 연대의 정치를 구성하기 위한 나침반이 되어줄 것이다.

일라이 클레어 Eli Clare

선천적 뇌병변 장애인, 젠더퀴어, 페미니스트, 친족 성폭력 생존자로서 살면서, 장애·환경·퀴어·노동운동가이자 시인, 에세이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당사자로서 사려 깊은 시선과 분석가로서 냉철한 비판을 오가는 글을 통해, 퀴어, 장애, 환경, 페미니즘, 계급, 인종 문제의 복잡한 얽힘을 성찰한다. 또한 단일 쟁점에 매몰되는 정치가 아닌 광범위한 교차성 정치로 나아가기 위한 연대가 필요한 이유를 역설한다. 이 책 『망명과 자긍심』(1990)은 일라이 클레어의 대표작으로, 출간 이후 지금까지 장애학, 퀴어학, 여성학 분야에서 주요 저서이자 교재로 손꼽히고 있다. 그 밖의 저서로 15년간 쓴 시를 모은 『골수의 이야기The Marrow’s Telling』(2008), 치료를 주제로 기억과 역사와 비판적 분석을 엮어 짠 『눈부시게 멋진 불완전함Brilliant Imperfection』(2017)이 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저자의 홈페이지 eliclare.com에서 볼 수 있다.)


국경없는 의사회 Doctor without Borders

"국경없는의사회의 설립 이념은 단순합니다. '환자가 있는 곳으로 간다.'

 지금은 당연해 보일지 모르지만 당시로서는 정말 혁신적인 개념이었습니다. 국경이 방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국경없는의사회'로 이름을 정한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 베르나르 쿠시네(Bernard Kouchner, 국경없는의사회 공동 설립자) 

1968년 5월, 파리 혁명의 열기 속에서 우수한 젊은 의사들이 전쟁과 재난 지역의 피해자들을 직접 찾아가 돕기로 했다. 그들이 주도한 새로운 흐름의 인도주의는 긴급구호를 개념을 변화시켰고, 국경없는의사회(Médecins Sans Frontières, MSF)의 시초가 되었다. 1971년 12월 22일, 국경없는의사회가 공식적으로 설립되었다. 당시의 국경없는의사회는 의사, 간호사, 그 외 스태프 등 300명의 지원자로 구성된 단체였고, 그 중에는 13명의 설립 의사와 언론인도 포함되어 있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성별, 인종, 종교, 정치적 성향을 떠나 누구나 의료 서비스를 받을 권리가 있다는 신념, 그리고 사람들에게 필요한 의료 지원이 국경보다 더 중요하다는 신념을 바탕으로 설립되었다. 1980년 이후, 국경없는의사회는 지금까지 전 세계에 총 29개 사무소를 설치하고, 3만여 명의 직원이 활동하고 있다. 설립 이후, 국경없는의사회는 1억 명이 넘는 환자를 치료해 왔다. 2014년 한 해 동안 실시한 외래 진료만도 830만 건에 달한다.

【출처】국경없는의사회 한국 홈페이지 발췌, https://www.msf.or.kr/founding-msf


열방의 의인들 Righteous among the Nations

열방의 의인은 이스라엘에서 사용되는 명예 칭호로서, 홀로코스트 때 유대 민족에 속하지 않으면서 나치로부터 유대인을 구해내기 위해 자신의 생명의 위험을 무릅쓴 사람들에게 이 칭호가 수여된다. 

1953년부터 이스라엘의 홀로코스트 박물관 야드 바샘은 26,973 명을 열방의 의인들 (Righteous among the Nations)로 명명했다. 아들은 각국에서 죽음의 수용소로 보내어질 위기에 처한 유대인들을 비밀리에 보호하고 구해낸 이스라엘의 친구가 된 이방인들이다. 만일 이 일이 발각되면 당시 나치에 의하여 사형에 처해짐에도, 그들은 생명을 걸고 유대인들을 도왔다. 어떠한 물질적 보상이나 명예를 원한 것도 아니었다.

【출처】https://ko.wikipedia.org/wiki/열방의 의인, 발췌 및 편집


말랄라 유사프자이 Malala Yousafzai

말랄라 유사프자이는 1997년 7월 12일 파키스탄에서 태어나 아프카니스탄 접경 지역인 스와트밸리에서 자랐다.

열한 살 때 영국 BBC 방송의 우르두어 블로그에 탈레반 치하의 삶에 대해 글을 쓰면서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굴 마카이라는 필명으로, 지역 내 여성 교육을 위해 싸우는 자기 가족의 이야기를 주로 들려주었다.

2012년 10월, 탈레반의 공격 대상이 되어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머리에 총을 맞았다. 그러나 기적적으로 살아나 교육 운동을 계속하고 있다.

그녀의 용기와 지지가 세상에 알려지면서, 말랄라는 2011년 파키스탄 청소년평화상을 수상하고 국제아동인권평화상 후보에 올랐다. 또한 역대 최연소로 노벨평화상 후보에 지명되기도 했다. 시사 주간지 [타임]이 선정하는 ‘올해의 인물’에서 차점자 4인 중 한 명으로 꼽혔으며, 그 밖에 다수의 상을 받았다.

지금은 ‘말랄라 펀드’라는 비영리 조직을 통해 지역 공동체가 주도하는 프로그램에 투자하고 전 세계의 교육 운동가들을 지원하면서, 누구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실현하기 위한 활동을 전개해나가고 있다.

【출처】https://ko.wikipedia.org/wiki/말랄라_유사프자이, 발췌 및 편집


넬슨 만델라 Nelson Mandela

넬슨 만델라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보통선거 실시 이후 뽑힌 세계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었다. 대통령으로 당선되기 전에 그는, 아프리카 민족회의(ANC)의 지도자로서 반아파르트헤이트운동 즉, 남아공 옛 백인 정권의 인종차별에 맞선 투쟁을 지도했다.

어린시절부터 흑인에게 차별적인 교육 내용에 대해서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으며, 후견인이자 족장이었던 욘긴타바 달린드예보에게서 아프리카의 역사와 진실에 대해 듣게 된 후, 흑인들을 위해 일하는 꿈을 갖게 되었다.

남아공 옛 백인 정권의 인종차별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에 맞선 투쟁 활동을 시작으로 남아공 정부를 상대로 사보타주와 테러로 맞서다 결국 당국에 체포되어 종신형을 선고받고 무려 27년동안 투옥되었다.

석방 후 아파르트헤이트 철폐, 흑인 투표권 부여 등의 성과를 인정받아 1993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고, 이후 이뤄진 보통선거에서 남아프리카 공화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국부이며, 오늘날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인종을 가리지 않고 존경받는 인물이며, 현대 인류의 위대한 스승이자 평화의 화신이라고 평가받는다. 아프리카 대륙의 수많은 흑인들은 그를 영웅으로 높이 기리고 있으며 현대사의 위대한 위인 중 한 명이기도 하다.

【출처】 https://ko.wikipedia.org/wiki/넬슨_만델라 발췌 및 편집


마틴 루터 킹 Martin Luther King. Jr

마틴 루터 킹 주니어(Martin Luther King, Jr.)는 1954년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 운동을 이끌면서 흑인 민권 운동을 시작하였다. 이 운동은 미국의 인종 불평등 현상과 킹 목사의 지도력을 전세계에 보여주었고 미국 흑인 민권 운동이 더욱 힘을 얻게 되었다. 킹 목사는 이 운동을 선두에서 지휘하였고, 국제적으로는 흑인의 권익을 대변하는 대표 인물이 되었다.

 이후 1963년는 베트남 전쟁 파병에 반대하는 운동을 전개하면서 무의미한 전쟁에 젋은이들을 희생시키고 있으며 베트남 국민들을 학살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같은 해 8월 워싱턴 DC에서 약 20만 명의 시민이 참여한 집회에서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라는 연설을 통해 인종 차별 철폐와 인종 간의 공존이라는 정신을 간결한 문체와 평이한 말로 호소해 넓은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 1964년 인종차별에 대한 비폭력 저항 운동으로 노벨 평화상을 받게 된 후에도 반전 운동을 계속해 나갔다.

베트남 전쟁 장기화되던 1968년 4월 4일 멤피스의 한 모텔에서 미리 잠입해 있던 인종차별주의자 제임스 얼 레이가 쏜 총에 킹 목사가 쓰러졌다. 결국 병원 이송 중 과다 출혈로 사망하고 말았다.

폭력 노선과 흑인 분리 독립을 주장하던 다른 흑인 지도자들과 달리 그의 비폭력 저항운동은 많은 지지자를 획득했고 흑인도 인간이라는 시각의 확산을 촉진시켰다. 1986년부터 미국에서는 그를 기려 매년 1월 세 번째 월요일을 마틴 루터 킹의 날로 정하고 공휴일로 지정하고 있다.


공감의 뿌리 Roots of Empathy - Mary Gordon

메리 고든은 교육자이자 세계적인 연설가이다. 1996년 캐나다에서 ‘공감의 뿌리(Roots of Empathy)’를 설립하여 사회기업상을 수상했다. 캐나다 토론토에서 유치원 교사였던 메리 고든은 ‘아무것도 모르는 갓난아기가 가진 힘’을 발견하고 지역에 사는 갓난아기를 초·중등학교에 초대해 아이들로 하여금 한 학년 동안 성장 과정을 지켜보도록 하는 ‘공감 능력을 높이는 심리 교육’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이 ‘공감의 뿌리’ 프로그램을 통해 아이들은 갓난아기의 눈부신 성장을 지켜보고 사회 편견이나 고정 관념에 노출되지 않은 아기를 만나면서 자신의 순수한 마음과 따뜻한 감정을 발견하고 표현하는 능력을 길렀다.

프로그램이 실시된 지 10년이 지나면서 캐나다 전역에서 집단 괴롭힘이나 따돌림 현상이 90퍼센트나 줄어드는 놀라운 결과를 낳았으며, 공감 능력의 발달과 함께 학습 능력도 향상되었다는 연구 결과들이 나오고 있다. ‘공감의 뿌리’는 현재 캐나다 9개 주와 뉴질랜드, 오스트레일리아, 미국 등지에서 5만여 학생을 만나고 있다. 국내에서는 2021년부터 티앤씨재단과 함께 공감의 뿌리 프로그램을 확장해 나갈 예정이다. 메리 고든은 아쇼카 장학금, 프레이저 머스타드 상, 캐나다 교육자상, 명예 캐나다인 상을 받았다. 

【출처】메리 고든(2010). 《공감의 뿌리》. 샨티. 작가 소개 中


The Righteous - Martin Gilbert

1974년 오스카 쉰들러(Oskar Schindler)의 장례행렬을 예루살렘에서 목격하면서 25년 간의 연구가 시작되었다. 마틴 길버트(Martin Gilbert)는 유럽의 국가들 별로 나치가 점령한 지역에서 일어났던 조용한 움직임들과 함께 인간의 존재를 귀하게 여기는 숭고한 정신을 드러내고자 했다. 당시 구조되었던 한 유대인은 "오늘날 유대인 한 명의 생명을 구한 의인이 있다면, 과거에는 그 같은 일을 했던 사람이 열 명, 그 이상이 존재했다"고 하였다.

나치가 점령한 유럽에서 유대인들을 돕기 위해 스스로 위태로움과 공포를 감내한 영웅들에 대한이야기는 많은 책들을 통해 소개되었다. 하지만 저명한 역사학자 길버트는 그들이 구출한 유대인들의 1인칭 시점을 통해 재검증 하고자 하였다. 구조한 의인들의 모습을 담은 스케치, 그들의 유대인을 구출했던 방법, 그리고 용기 있는 선택으로 인해 그들이 견뎌야 했던 공포들은 이 책을 통해 알려졌다.

한 예로 빌나(Vilna)에서는 1939년부터 1944년까지 독일 장교 칼 플라게 소령(Maj. Karl Plagge)이 유대인을 자동차 수리공으로 고용하여 그들을 보호했다. 독일의 한 눈 덮인 숲속에서 얼어붙은 채 노역을 하던 젊은 유대인은 외딴 지역에 사는 노부부로부터 신발 한 켤레를 받았다. 그 젊은 유대인은 그 노부부들의 이름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동안 숨겨져 왔던 이야기는 책이라는 한계로 인해 짧게 줄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처럼 용기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나 많다는 바로 그 사실이 우리가 역사의 가장 어두운 순간들에 주의를 기울이는 충분한 이유가 되어 준다.


Clara의 전쟁 - Clara Kramer

<Clara의 전쟁: 한 소녀의 생존 이야기>는 클라라 크라이머(Clara Cramer)와 스테판 글랜츠(Stephen Glantz)의 회고록으로, 클라라가 폴란드를 점령한 나치 치하에서의 숨겨진 이야기를 들려준다. 뉴저지 주 유니온(New Jersey, Union)에 있는 키안 대학교(Kean University)의 홀로코스트 자원 센터는 클라라 크라이머가 설립한 곳이다.


1939년 2차 세계대전 당시 클라라 크라머는 폴란드 졸키우에 살고 있는 유대인 공장주의 딸이었다. 독일이 소련을 침공한 이후에는 러시아인들이 연합군과 합세하면서 마을은 나치에게 순식간에 점령당한다. 유대인들은 재산을 빼앗기고 빈민가로 이주하라는 명령을 받지만 클라라의 가족과 친구들은 몸을 숨기기로 결심한다.


독일계 발렌틴 벡(Valentin Beck)의 가족, 클라라의 가족 등은 멜먼(Melman)의 집 아래 지은 벙커에 숨었는데, 이 책에서는 "말판보다 크지 않은 공간"이라고 묘사하고 있다. 총 18명이 상당 기간 벙커에서 살았고, 그 위의 집이 종종 독일 군인과 장교들의 숙소로 사용되었다. 클라라의 어머니는 그들이 전쟁에서 살아남지 못하더라도 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세상에 알릴 수 있도록 일기를 쓰라고 한다. 클라라는 벙커에서의 일상 생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 벡이 어떻게 그들에게 음식과 전쟁 소식을 가져다 주었는지 상세히 기록했다.

 

거주자 중 한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살아남아 해방된 졸키우를 볼 수 있었다. 전쟁 전 졸키우에서 살고 있던 5천명의 유대인 중 오직 50명만이 살아남았다고 한다.


위험한 외교 Dangerous Diplomacy - Theo Tschuy, Simon Wiesenthal

50년 넘는 세월 동안 정부 기록 보관소와 가족 신문 안에서 잠자고 있었던 이 극적인 이야기가 책으로 소개되면서 스위스 외교관 칼 루츠(Carl Lutz, 1895~1975)의 행적이 알려지게 되었다.

1942년부터 1945년까지 부다페스트 주재 스위스 영사로 부임 했었던 칼 루츠는 죽음의 수용소로 향하는 수만 명의 헝가리 유대인들을 위한 보호 서류를 발행함으로써 유대인 6만2000명을 추방하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루츠는 외교 규칙과 규칙을 어겼지만 결과적으로 나치 강제 수용소로 향하는 유태인을 홀로 구출한 용기 있는 사건이었다.

'위험한 외교'는 당시의 사진 자료들과 함께 러츠의 사심 없는 용기를 재조명하고 있다.

 

나의 이야기 My Story - Rosa Parks

로자 루이즈 매콜리 파크스(영어: Rosa Louise McCauley Parks, 1913년 2월 4일 ~ 2005년 10월 24일)는 미국의 민권 운동가로, 국 의회에 의해 “현대 인권 운동의 어머니”라고 명명되었다.

1955년 12월 1일,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에서 백인 승객에게 자리를 양보하라는 버스 운전사의 지시를 거부하였고, 결국 이로 인해 경찰에 체포되었다. 이 사건은 382일 동안 계속된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으로 이어졌고 인종 분리에 저항하는 큰 규모로 번져 나아갔다. 이때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여기에 참여하게 되고 결국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인권과 권익을 개선하고자 하는 미국 인권 운동의 시초가 되었다.

로자 파크스는 이후 여러 고초를 겪었지만 인권운동의 상징적 인물이 되었다. 백화점에서의 직장을 잃었으며 남편 또한 직장을 그만두어야 하였다. 백인 우월주의 단체인 KKK와 지역 백인들의 위협이 심해짐에 따라, 결국 가족은 고향을 떠나 북부 미시건 주 디트로이트시로 이사를 갔다. 그곳에서 로사는 민권 운동의 대변인 역할을 하며 1957년부터는 이 사건을 알리기 위해 각지를 돌며 연설하였다.

1992년 자서전인 《로자 파크스: 나의 이야기》(Rosa Parks: My Story)를 짐 해스킨스(Jim Haskins)와 공동 집필하였으며, 1995년에는 회고록인《조용한 힘 : 나라를 바꾼 여성의 신념, 소망, 심장》(Quiet Strength: The Faith, the Hope, and the Heart of a Woman Who Changed a Nation )을 그레고리 J. 리드(Gregory J. Reed)와 함께 공동 집필했다.

 

당신이 옳다

날로 팍팍해지는 현실 속에서 우리나라 3명 중 1명은 우울증상을 겪고 있고, 자살률은 몇 년째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에 사회적 재난 현장부터 일상의 순간까지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해온 정신과 의사 정혜신은 우리에게 ‘심리적 CPR(심폐소생술)’이 절실하다고 진단한다. 최근 15년 간 진료실을 벗어나 보통 사람들은 물론 트라우마 피해자부터 CEO까지 다양한 이들의 속마음을 만나며 우리 사회 곳곳에서 많은 이들이 무너지고 상처받고 있음을 확인한 결과이다. 이러한 응급 상황에 누구라도 심리적 CPR의 행동지침을 배울 수 있게 안내하고자 한다.

정혜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2005년 전두환정권에서 무고하게 고문을 당하고 18년간 억울한 감옥살이를 했던 박동운 선생을 만난 이후로 1970~80년대 고문생존자,  5·18광주민주화운동 피해자 등 국가폭력 피해자들의 치유자로 살았다. 2008년부터 고문피해자를 돕기 위해 만든 재단 ‘진실의 힘’에서 고문치유모임의 집단상담을 이끌었고, 2011년 쌍용차 해고노동자와 그 가족들을 위해 집단상담을 시작하며 심리치유센터 ‘와락’을 만들었다. 진료실에 머무는 의사가 아닌, 거리의 의사가 꿈인 정혜신은 세월호 참사 이후 안산에 거주하며 치유공간 ‘이웃’의 이웃 치유자로 살아가고 있다. 지은 책으로 『정혜신의 사람 공부』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공저) 『당신으로 충분하다』 『홀가분』 『사람 vs 사람』 『남자 vs 남자』 등이 있다.

【출처】 정혜신(2018). 《당신이 옳다》. 해냄출판사. 작가소개 中

 

Saving the Jews - Mordecai Paldiel

이스라엘의 야드 바셈 홀로코스트 기념관(Yad Vashem Holocaust Memorial)으로부터 '정의로운 이방인'으로 추앙받은 유대인이 아닌 47명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야드 바셈의 의인에 관한 국가 프로그램 책임자인 팔디엘(Mordecai Paldiel)은 2차 세계대전 중 나지 점령 하의 프랑스에서 홀로코스트동안 프랑스 신부 덕분에 살아남았다. 그 신부는 팔디엘과 가족들이 프랑스에서 스위스로 탈출하는 것을 도와주었다.

팔디엘이 정리한 70명의 의인 중 유일하게 인정받는 영웅은 배리언 프라이(Varian Fry)이다. 미국인인 프라이는 프랑스에 있는 수천 명의 유대인들을 위해 탈출 경로와 비자와 여권을 제공함으로써 이들의 삶을 구했다. 이외에도 12명의 유대인을 숨긴 리투아니아인 목수(그리고 1952년 동료 리투아니아인에게 암살당했다)와 50명의 유대인을 터키인으로 명명하여 이들을 구한 로도스(Rhodes) 주재 터키 총영사 등이 있다. 지금까지 위인으로 거의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이 자신의 목숨을 걸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목숨까지 위태롭게 만들면서 타인을 지키고자 했던 감동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타인에 대한 연민 - Martha C. Nussbaum

현 시대를 대표하는 지성 마사 누스바움은 오래도록 ‘정치적 감정’이라는 표현으로 인류 사회에 현미경을 들이대왔다. 이 책에서는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 철학자들의 사상과 현대 심리학자들의 언어를 빌려 인간의 근본적인 감정인 두려움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미지의 생 앞에서 한없이 불안해진 개인이 어떻게 이를 타인에 대한 배제와 증오로 발산하고, 나아가 사회적 분열을 일으키는지 그 내면의 지도를 그려낸다. 또한 기존의 학자적 시선을 확장해, 이 책을 읽는 이들의 실제 행동을 독려하는 실천적 지식인으로서의 면모를 드러낸다.

두려움이 어떻게 시기와 분노라는 유독한 감정들로 번져 가는지, 대중들의 공포심을 자극하는 포퓰리즘 정치가 현대 민주주의를 좀먹는 과정을 냉철하게 진단하고 있다. 또한 미국의 인종 차별, 여성 혐오, 동성애 혐오, 무슬림 혐오 등의 사례들이 나열된다. 이는 미국의 이야기지만 극심한 기시감을 준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은 과연, 이와 얼마나 다른 얼굴을 하고 있는지 의문을 품게 한다.

암울한 혐오의 시대를 넘어 한 걸음 나아가기 위해서, 마사 누스바움는 인문학과 예술에서 희망의 실마리를 찾으려 애쓴다. 누군가를 맹렬히 비난하는 일보다, 온전히 이해하는 일이 어렵고 지난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저자이지만 전 세계를 위협하는 정치적 위기 앞에서 현실을 직시하고, 더 나은 함의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 그 무엇보다 기본적인 인간의 존엄과 존중을 외치는 것이다.

【출처】마사 누스바움 (2020). 타인에 대한 연민. 알에이치코리아. 출판사 서평 중 발췌


용서 없이 미래도 없다 No Future without Forgiveness - Desmond Tutu

데스몬드 음필로 투투(영어: Desmond Mpilo Tutu, 1931년 10월 7일~) 대주교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성공회 (엉어: Anglican Church of South Africa)의 대주교이다.

그는 런던 대학교에서 공부했는데, 유학생 시절 흑인과 백인 모두 줄을 선 차례대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영국 은행의 공정함을 보면서 거주지, 거주 이전의 자유, 직업 모두에서 차별받는 남아공의 극심한 인종차별의 부당성을 생각했다고 전해진다. 성공회 사제가 된 이후, 1980년대 남아공 교회협의회의 인종차별 반대운동을 주도하였으며, 1994년 흑백연합정부가 수립된 후에는 진실과 화해위원회(TRC) 위원장으로 활동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성공회 케이프타운 교구 전 교구장을 역임하였으며, 1984년 남아프리카 공화국 내부의 인종차별 반대 운동에 대한 공로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였다.

그의 저서인《용서 없이 미래도 없다》에서는 남아공의 인종차별이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개신교와 성공회 모두 인종차별에 저항하기는 커녕 어떻게 순응하거나 정당화했는지와, 데즈먼드 투투 대주교가 의장으로 참여한 진실과 화해위원회의 과거사 청산 과정을 자세히 설명함으로써 과거사 청산이 철저한 진상조사와 용서가 실천될 때에 가능함을 주장하였다.

【출처】https://ko.wikipedia.org/wiki/데즈먼드_투투 발췌 및 편집


타인의 고통 Regarding the Pain of Others - Susan Sontag

<타인의 고통>에는 세 부류의 사람들이 관되어 있다. 책 속에서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이들과 그것을 즐기거나 혹은 두려워하며 바라보는 사람들. 그리고 그 책을 보고 있는 사람들. 사람들은 그들이 겪었을 고통의 깊이에 대해서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할 수는 있지만 실감은 하지 못한다. 그것은 사진 안에서 형을 집행하는 이들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하면 죄인(이라 여겨지는 이)에게 최대한의 고통을 가해야 하는지 혹은 타인을 향한 타인의 증오를 대신 내뿜는 것 뿐이었다. 수잔 손택이 보기에, 그 광경과 사진은 일반인들에게 포르노그라피로서 작용하고 있다. 그들에게 '타인의 고통'은 연민의 대상임과 동시에 스펙타클한 '즐길 거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직접 경험해 보지 않고도 그 참상에 정통해지고, 진지해질 수 있는 가능성마저 비웃게 된다.

현대 스펙터클의 최고는 단연코 '전쟁'이다. 이미 걸프전이나 최근 이라크전을 통해 마치 게임처럼 보여지는 전쟁상황을 지켜봤던 우리들로서는 실감나는 대목이다. 사람들은 그 장면들을 보며 무기의 명중률이 얼마나 좋은가 얼마나 많은 이들이 죽었는가에만 관심을 갖는다. 이것들은 흔히 '전쟁 미학'이라 미화되지만 가장 빠른 시간에 가장 대규모로 고통을 유발하는 현실에 대한 눈가림일 뿐이다.

미국 최고의 에세이스트이자 평론가, 소설가인 수잔 손택은 실제의 고통이 무엇인지, 타인의 고통에 개입할 능력을 잃어가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고발하고 있다.

【출처】수잔 손택(2004). 타인의 고통. 이후. 책 소개 중 발췌


공감 연습 The Empathy Exams - Leslie Jamison

<공감 연습>에는 약 8년간 여러 지면에 발표했던 제이미슨의 에세이 11편이 실려 있다.

저자는 우리가 어떻게 고통에서 의미를 찾으려 애쓰고 공감하는지에 중점을 두고, 이 책이 일종의 공감 여행이 되도록 독자들의 경험을 상상하며 글의 순서를 정했다고 한다. 각각의 에세이는 서로 다른 시기에 쓰였고 각기 다른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고통과 공감을 매개로 응집력 있게 연결된다.

무엇보다 제이미슨의 글은 매우 독특한 색깔을 띤다. 일단 소재부터 굉장히 폭넓고 다양하다. 의료 배우medical actor라는 직업 경험과 낙태 경험, 모겔론스 병 취재, 니카라과 거주, 멕시코와 볼리비아 여행, LA 갱 투어, 울트라마라톤 취재, 교도소에 갇힌 수감자 면회, 억울하게 옥살이한 소년들의 이야기, 거식증과 자해 행위 등 그녀 자신이 직간접적으로 겪었거나 보고 접했던 일들이다. 저자는 빈곤과 폭력, 소외, 질병, 상처 등 실로 다양한 고통의 지층을 방문하고 탐구함으로써 고통에 관한 이야기를 예리한 시선으로 펼쳐낸다.

이에 더해 르포, 체험기, 여행기, 문학비평, TV 및 영화 비평 등으로 분류되었을 글들에 저자의 개인적 시선을 가감 없이 덧붙임으로써 훨씬 풍부한 결과물이 만들어졌다. 저자는 우리가 타인을 이해하는 방식에 관해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공감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어떻게 다른 사람의 고통을 함께할 수 있을까? 바로 그런 질문과 성찰이 이 에세이의 모든 층위에 배어 있다.

【출처】레슬리 제이미슨(2019). 공감 연습. 문학과지성사. 책 소개 중 발췌


Freedom on the menu - Carole Boston Weatherford, Jerome Lagarrigue (Illustrator)

1960년 2월1일 그린스보로 시내의 울월스 간이식당에서 노스캐롤라이나 농업기술대 흑인 대학생 4명이 백인 전용좌석에 앉아 커피와 음식을 주문했으나 주인이 거절하자 연좌농성(sit-ins)을 하기 시작했다. 당시 남부 11개주에서 화장실, 레스토랑, 호텔, 극장, 기차 등 공공시설에서 흑백을 분리한 인종차별법인 `짐 크로우 법'이 시행돼 흑인들은 식당내 간이의자에 앉아 샌드위치나 햄버거 등을 사먹을 수 없었다.

이 식당의 흑백차별에 항의하는 연좌농성은 5일째 되던 날 1천여명에 이르렀고, 민권단체와 백인 대학생들까지 가세한 가운데 6개월간 지속됐다. 결국 7월 말 식당 내 좌석의 흑백분리는 폐지되어 민권운동 승리의 상징이 되었다.

같은 시기 테네시주 내슈빌 다운타운 내 5번가에 있는 백화점과 약국 등에 있던 간이식당에서도 흑인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차별에 항의하는 연좌농성이 시작됐다. 대학생들은 간이식당의 백인전용 카운터에 앉아 샌드위치를 주문하며, 흑백차별에 항의했고, 주인이 음식 제공을 거부하자 연좌농성으로 맞서며 항거했다.

연좌농성을 벌이던 대학생들은 경찰에 체포되어 구속되거나 백인들로 부터 구타를 당하는 모욕을 당하기도 했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저항을 계속해 그해 5월10일부터는 흑백차별이 사라지게 되었다.

【출처】https://www.yna.co.kr/view/AKR20100202002600092


안네의 일기 The Diary of a Young Girl - Anne Frank

아넬리스 마리 안네 프랑크(Annelies Marie Anne Frank, 1929년~1945년)는 나치가 네덜란드를 지배한 시기에 쓴 일기로 유명하다.

안네는 1929년 독일의 프랑크푸르트에서 유대인 은행가 오토 프랑크(Otto Frank)와 어머니 에디트 프랑크(Edith Frank) 사이에서 태어났다. 1933년에 히틀러가 정권 하에서 유대인들에 대한 인종차별과 학살이 일어나자, 삼촌들은 미국으로 안네의 가족은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으로 망명했다. 1942년 안네의 아버지는 한 공장 사무실에 있는 창고를 책장으로 위장해서 가족들과 함께 피신하였다.

안네는 친구에게 속내를 털어놓듯, 일기장에 '키티'라는 이름을 지어주며 네덜란드가 독일군 치하에 있던 2년여 간의 일상을 기록하였다. 여덟 명이 함께 지낼 수밖에 없는 좁은 공간에서 안네는 씻고 먹고 자고 책을 읽고, 자랐다. 1944년 누군가의 밀고로 게슈타포에게 발각되어 은신처에 숨어있던 전원이 강제수용소로 끌려갔다. 결국 16세의 나이로 1945년 3월 유대인 강제수용소 베르겐벨젠에서 영양실조와 장티푸스로 사망했다. 해방되기 2달 전이었다.

수용소로 끌려가기 전까지 쓰인 일기는 전쟁으로 인한 공포와 은신처가 발각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도 희망에 찬 목소리로 사춘기 소녀다운 미래를 꿈꾼다. 이토록 삶에 대한 의지를 놓지 않았던 안네의 모습에서, 당시 상황을 상세히 알게 됨과 동시에 그 곳에도 어디서나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평범한 소녀가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출처】https://ko.wikipedia.org/wiki/안네_프랑크


The Yellow Star - Carmen Agra Deedy, Henri Sorensen (Illustrator)

덴마크에서 전해오는 <노란 별>은 제2차 세계대전 중 평화와 평등을 실천했던 크리스티안 10세 국왕의 이야기이다.

크리스티안 10세는 1870년 코펜하겐 근처의 샬로텔룬 궁전에서 태어났다. 1912년 덴마크와 아이슬란드의 국왕으로 즉위한다. 세계 대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덴마크는 1940년 4월 9일, 나치 독일에 점령되었다. 히틀러는 덴마크를 같은 게르만 민족 국가라고 보고 있었기 때문에, 덴마크 정부와 함께 크리스티안 10세가 코펜하겐에 머무는 것을 허용했다. 하지만 나치 독일의 폭압적인 레벤스보른 정책(아리아인을 보호하고 보존하는 정책)과 홀로코스트의 행각에 크게 분개한 크리스티안 10세는 히틀러가 장문의 편지를 짧게 답한 것을 시작으로 덴마크 왕궁에 내걸려 있던 하켄크로이츠기를 내려버렸다.

결국 자신의 나라에 거주하던 유대인과 집시를 구하기 위해 유대인이든 유대인이 아니든 ‘덴마크 국민은 하나’라는 마음으로 전국민에게 다윗의 별이라고 불린 ‘노란 별’을 달 것을 명령한다. 이에 크게 노한 아돌프 히틀러는 1944년 아이슬란드를 동군연합에서 독립시켜버렸고 덴마크 주재 대사를 소환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에 그는 덴마크 국민들에게 크게 존경받는 국왕이 되었고 사후 그는 덴마크의 국부로 칭송받게 되었다.

【출처】https://ko.wikipedia.org/wiki/크리스티안_10세

A Light in the Darkness - Albert Marrin

<어둠 속의 빛>은 홀로코스트에서 아이들과 함께 죽어가는 영웅적인 폴란드 유대인 의사 코르차크(Janusz Korczak)의 감동적인 이야기이다. 야누시 코르차크(Janusz Korczak, 1878년~1942년), ‘노老 의사(Stary Doktor)’ 또는 ‘의사 선생님(Pan Doktor)’이라 불리기도 한다. 폴란드의 의사이며 교육학자, 작가, 기자, 사회운동가이다.

코르차크는 "아이들은 내일의 사람이 아니라 오늘의 사람"이라고 말하며, 폴란드에서 ‘고아들의 집’과 ‘우리들의 집’이라는 고아원을 설립∙운영하였다. 또한 어린이들의 자율과 권리, 자유의 보장을 기초로 아동인권운동을 전개하였으며, 후에 UN 아동 권리 선언의 기초가 되었다.

2차 세계대전 발발 후에 코르차크는 인생의 마지막 수 개월을 바르샤바 게토 구역에서 보내게 되었다. 지인들은 문서를 조작하여 게토 구역에서 탈출시키려 했으나 그가 거절했다고 한다. 1942년 게토에서 강제수용소로 유대인 이주가 진행되던 날, 코르차크는 운송 차량이 있는 곳까지 고아원 아이들 200여 명과 수십 명의 선생님들과 함께 행진을 하였다. 아이들은 안식일에 입는 가장 좋은 옷을 입고 좋아하는 장난감을 들고 행진에 참여했고, 앞장 선 한 남자아이가 바이올린을 연주했다. 나치 친위대는 매질을 하고 아이들 머리 위로 총을 쏘아 댔지만, 행진을 막지는 못했다. 코르차크는 트레블린카에 있는 강제수용소에서 아이들과 함께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그들의 마지막 행진은 전설이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세부사항을 바꾸기는 했지만 전쟁 회고록에 자주 등장하는 장면이 되었다.

【출처】https://ko.wikipedia.org/wiki/야누시_코르차크

Ho Feng Shan - Mike Evans

호펭샨(何鳳山, Ho Feng-Shan, 1901년~1997년)은 제2차 세계대전 중 비엔나 주재 중국 총영사로 수많은 유대인들을 구하면서 중국의 오스카 쉰들러라고 불리운다.

그는 1937년 비엔나에 있는 중국 공사관의 제1서기로 임명되었다가, 1938년 오스트리아가 나치 독일에 합병되고 공사관이 영사관으로 바뀌었을 때 총영사에 임명되었다. 당시 20만명의 오스트리아 유대인의 상황은 매우 어려웠고 나치를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유럽을 벗어나는 것뿐이었다. 탈출을 위해서는 외국에서 온 비자 또는 이민증명서가 필요했는데 호펭샨은 상사의 명령을 어기면서까지 유대인에게 비자를 발급하기 시작하였다. 총영사로 취임한지 반년만에 2,000여개의 비자를 내주었다. 이로 인해 많은 유대인이 상하이로 떠났고, 후에 홍콩과 호주 등지로 이주할 수 있었다.

1940년 중국으로 복귀하라는 명령을 받을 때까지 계속해서 비자에 서명을 했는데, 정확한 개수는 알 수 없지만 호펭샨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유대인이 목숨을 건졌는지 간접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호펭샨은 1997 년 미국에서 사망하였고, 2000 년 이스라엘의 야드 바셈(Yad Vashem)이 그에게 "열방의 의인"라는 칭호를 부여하였다.

【출처】https://en.wikipedia.org/wiki/Ho_Feng-Shan


별을 헤아리며 Number the Stars - Lois Lowry

소설 『별을 헤아리며』는 로이스 로리(Lois Lowry)가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고찰하며 집필한 작품으로, 덴마크의 10살 소녀가 나치로부터 친한 친구의 가족을 구하는 이야기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가 점령한 덴마크에서 유태인 추방과 학살이 벌어지던 당시 안네마리(Annemarie Johansen)와 그 가족들은 안네마리의 가장 친한 친구인 엘렌 로세(Ellen Rosen)을 가족의 일원으로 숨겨주게 된다. 안네마리의 눈을 통해 덴마크의 레지스탕스가 거의 7 천명에 달하는 덴마크의 유대인 전체를 바다 건너 스웨덴으로 탈출시키는 과정을 보게 된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중요한 소재인 '별 모양의 금목걸이'는 이스라엘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등장인물들이 보여주는 용기와 믿음을 상징하기도 한다. 안네마리와 로세 언니, 페테르 오빠, 헨리크 삼촌, 그리고 평범한 어부들과 과학자들 등 다양한 인물들이 보여주는 용기 있는 노력이 빛나는 작품이다. 전쟁의 시기에도 세상에 자부심과 인간의 품위가 있었다는 것을 상기시켜준다.

이 책은 1990년 뉴베리 상을 수상하였다. 현재 미국의 많은 초ㆍ중등학교에서 독서 지도용 수업 교재로 쓰이고 있다.

【출처】로이스 로리(2008). 별을 헤아리며. 양철북. 출판사 리뷰 중 발췌


Countrymen - Bo Lidegaard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덴마크는 자국의 유대인들을 국외 추방하려는 나치의 시도에 대해 적극적으로 저항한 유일한 점령지였다. 1943년 9월 28일, 독일 외교관인 조지 페르디난드 더크비츠(Georg Ferdinand Duckwitz)는 덴마크 저항군에게 나치가 덴마크계 유대인들을 추방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비밀리에 알렸다. 덴마크는 이에 즉각적으로 대응해서 유대인들을 바다를 통해 중립국인 스웨덴으로 몰래 이송할 전국적인 계획을 세웠다.

나치의 계획을 미리 알게 된 약 8,200명의 덴마크계 유대인들은 코펜하겐과 기타 다른 도시에서 기차, 자동차 및 도보로 피난을 가기 시작했다. 또한 덴마크 사람들의 도움으로 가정집, 병원 및 교회 등에 은신처를 마련하였다. 또한 덴마크 사람들은 유대인을 찾아내고 체포하는데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았다. 14일 동안 어부들은 자발적으로 자신의 어선으로 7,742명의 덴마크계 유대인들과 가족들을 태우고 좁은 해협을 건너 덴마크에서 스웨덴으로 안전하게 이송했다. 약 500명의 덴마크계 유대인들이 체코슬로바키아로 추방되기도 했지만 지속적인 덴마크 정부의 압박으로 이들 중 51명을 제외한 전원이 홀로코스트에서 살아 남을 수 있었다.

<Countrymen>을 통해 드러난 덴마크의 놀라운 이야기는 20 세기 끔찍한 역사 속에서도 평범한 사람들의 단순한 용기, 도덕적 강인함이 잔인한 학살에 저항하고 생명을 구할 수 있음을 증명해내고 있다.

【출처】https://encyclopedia.ushmm.org/content/ko/article/rescue-in-denmark


Let it Shine : Stories of Black Women Freedom Fighters - Andrea Davis Pinkney, Stephen Alcorn(Illustrator)

작가 안드레아 핀크니(Andrea Davis Pinkney)과 삽화가 스테판 알콘(Stephen Alcorn)은 <Let It Shine>을 통해 자유를 위해 싸운 흑인 여성들을 소개하고 있다. 로자 파크스(Rosa Parks)는 버스 좌석 포기를 거부하고 미국을 변화시킨 보이콧을 촉발하였다. 해리엇 터브먼(Harriet Tubman)은 지하 철도에서 300 명 이상의 노예가 남부를 탈출하도록 도왔다. 셜리 치솔름(Shirley Chisholm)은 미국 하원에 선출된 최초의 흑인 여성이 되었다. 이 여성들의 삶은 억압에 굴복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선 용기를 보여준다. 여러 세대에 걸쳐 동안 자유의 길을 밝힌 10 명의 대담한 여성의 삶을 기념하고자 한다.

(1) Sojournor Truth, (2) Biddy Mason, (3) Harriet Tubman, (4) Ida B. Wells-Barnett, (5) Mary McLeod Bethune, (6) Ella Josephine Baker, (7) Dorothy Irene Height, (8) Rosa Parks, (9) Fannie Lou Hamer, (10) Shirley Chisholm

【출처】https://www.amazon.com/Let-Shine-Stories-Freedom-Fighters/dp/0547906048/


The Good German of Nanking - John Rabe

<난징의 의로운 이>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가장 끔찍한 대량 학살 사건의 하나인 난징 대학살의 참상을 보여주는 중요한 책이다. 작가는 독일 함부르크 출신의 욘 하인리히 데틀레프 라베(John Heinrich Detlev Rabe, 1882년~1950년)로 난징 대학살 때 수많은 중국인들의 목숨을 구하고자 노력하였다.

1937 년 11 월, 일본군이 중국의 난징을 점령하고 시민들에 대한 고문, 강간, 살인을 시작했을 때, 30 년 동안 중국에 살았고 나치당원이었던 라베는 중국인들을 구하기 위해 안전구역을 설치하였다. 특히 다른 외국인들과 국제위원회를 조직하고, 난징 주재 외국대사관과 난징대학교에 안전구역을 통해 중국인 난민들에게 음식과 피난처를 제공하였다. 또한 자신 집에 650명이 넘는 피난자들이 숨겨주었다. 일본군에게 그의 나치당원증명서로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지만, 그 마저도 역부족이었다. 결국 일본군의 지속된 학살에 25만 명 이상의 중국인이 목숨을 잃었다.

 

1938년 독일로 돌아간 라베는 베를린에서 일본군의 잔학한 학살 장면이 담긴 필름과 사진을 발표하였고, 히틀러에게 비인간적인 학살을 멈추도록 영향력을 행사해 줄 것을 요청했으나, 그 결과 감금과 심문만 당하게 되었다. 종전 후 나치 당원 경력으로 인해 연합군에 체포되었으나 무죄가 입증되어 풀려났다. 빈곤한 삶을 살던 라베는 그의 선행을 알게 된 중국 정부의 경제적인 지원을 받게 되었고, 1997년에는 그의 비석이 난징학살기념관 내에 안장되었다.

【출처】https://ko.wikipedia.org/wiki/욘_라베


Passage to freedom: The Sugihara Story - Ken Mochizuki, Dom Lee (Illustrator)

<자유를 향한 길>은 1940년 다섯 살 난 히로키 스기하라의 눈으로 본 리투아니아의 유대인 난민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히로키 스키하라의 아버지인 치우네 스기하라(Chiune Sugihara)는 일본 영사였다. 1940년 7월 폴란드를 점령한 나치군으로 인해 탈출한 수백명의 유대인 난민들이 비자 발급을 요청하며 영사관 앞으로 몰려들었다. 유대인들은 러시아를 가로질러 일본으로 갈 수 있는 비자를 받아 나치군에게서 벗어나고자 한 것이다. 히로키의 아버지인 치우네 스기하라는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까지 위험한 상황에서 비자를 청원하기로 한다. 일본 정부는 그의 요청을 세 번이나 거절했지만, 치우네 스기하라는 “내가 안 하면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것”이라며 비자를 발급했다. 가족들도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을 돕기로 마음을 먹고, 하루에 300개씩 비자를 작성해서 나눠준다.

마침내 독일과 소련이 리투아니아를 점령하면서 스기하라는 영사관을 떠나라는 명령을 받는다. 스기하라 가족이 떠나는 기차가 역에서 멀어지는 상황에서도 기차를 따라 달리는 유대인들에게 계속 허가서를 나눠주었다. 이때 약 10,000여명의 유대인 난민을 목숨을 건진 것으로 추정된다.

【출처】https://www.leeandlow.com/books/passage-to-freedom/teachers_guide


Irena's Children - Tilar J. Mazzeo

이레나는 1935년부터 바르샤바 시의 사회 복지 공중보건부에서 간호사이자 사회복지사로 근무하였다. 1939년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했을 때 이레나는 고아와 가난한 사람들에게 음식, 의복, 의약품 등을 제공하는 업무를 담당하게 되었다. 이 때부터 유대인들을 가상의 기독교 이름으로 등록하고 전염병이 퍼졌다는 이유로 외부인과의 접촉을 막아 유대인들을 보호하기 시작했다.

1942년 나치가 바르샤바에 게토를 설치하자 레지스탕스에 합류하여 아이들을 구하는 임무를 맡았다. 이레나는 정부의 사회복지사로서 합법적으로 게토를 출입하면서 매일 구호물품을 가지고 갔다. 특히 유대인의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아이들을 게토 밖으로 데리고 나가서 유대인이 아닌 가족들에게 맡기기 시작하였다. 아이들을 위해 위조한 신분증을 발급하고 구급차, 자루, 바디백, 관 등에 숨겨 약 2,500여명에 달하는 아이들을 게토에서 탈출시켰다. 이레나는 로마 가톨릭 신자로서 교회를 통해 아이들을 돌봐 줄 가족을 찾을 수 있었다. 이레나는 아이들의 원래 이름과 위조된 이름을 함께 정리하여 뒷마당 사과나무 아래 숨겨두었다. 후일 아이들이 자신의 뿌리를 찾을 수 있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1943년 나치에게 발간된 이레나는 결국 투옥되고 급기야 사형 선고를 받았다. 고문과 사형 선고에도 불구하고 이레나는 아이들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이후 레지스탕스 동료들이 게슈타포에서 뇌물을 주어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

2007년 이레나는 노벨 평화상 후보로도 선정되었다.

【출처】https://www.findagrave.com/cemetery/online/26800705

조마리아(조성여) 여사

조마리아(趙姓女, 배천 조씨 부인, 1862년 5월 6일(음력 4월 8일) ~ 1927년 7월 25일)는 한국의 독립운동가로 안중근의 어머니이다. 천주교 세례명은 마리아(瑪利亞)이다.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하여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아들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뒤 일제에 의해 사형 판결을 받자 항소하지 말라고 권했다는 일화가 널리 알려져 있다. 아들이 결국 처형된 뒤 중국 상하이에서 당시 임시정부 인사들에게 여러가지로 도움을 주며 독립운동의 정신적 지주로 불렸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8월 조마리아 여사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다.

아래 글은 조마리아가 감옥의 아들에게 보낸 편지라고 알려진 내용으로 이를 두고 시모시자(是母是子, 그 어머니에 그 아들로 위대한 사람 뒤에 위대한 어머니가 있다는 의미임)라고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다.

“네가 만일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라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조소거리가 된다. 너의 죽음은 너 한사람의 것이 아니라 한국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가 공소를 한다면 그것은 목숨을 구걸하고 마는 것이 되고 만다. 네가 국가를 위하여 이에 이르렀을 즉 죽는 것이 영광이다. 모자가 이 세상에서는 다시 상봉치 못하겠으니 그 심정을 어떻다 말할 수 있으리... 천주님께 기원할 따름이다.”

다만 안중근 평화연구원은 위 편지 내용이 실제 기록으로 남겨진 게 아닌 구설(口說)일뿐이라고 밝혔다.

【출처】https://ko.wikipedia.org/wiki/조마리아 발췌 및 편집

남자현

남자현(南慈賢, 1872년 12월 7일 ~ 1933년 8월 22일)은 한국의 독립운동가로, 3·1 운동에 참여하고 만주로 망명해 서로군정서에 참가하였으며 사이토 마코토 조선 총독의 암살을 기도하는 등 여러가지 독립운동을 진행했다.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에 비견되었고,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2015년 영화 암살의 주인공인 안옥윤(배우:전지현)의 실제 모델이기도 하다.

남자현은 1872년 12월 7일 경상북도 안동에서 아버지 남정한(南珽漢)과 어머니 진성 이씨 사이에서 1남 3녀 가운데 막내딸로 태어났다. 19세가 되던 1891년 무렵, 김영주(金永周)와 결혼했으나, 김영주는 1895년 을미사변 때 의병을 일으켰다가 사망하였다. 남편 사후 양군 수비면 계동으로 옮겨 그곳에서 3대 독자인 유복자 김성삼을 낳아 기르면서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았다.

1907년 가을, 부친 남정한 선생이 의병을 일으켰을 때, 남자현은 장정소집과 정보수집 책임을 지고 적의 후방교란 등 대담무쌍한 활약을 하였다. 1919년 3·1 운동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아들과 함께 만주로 망명하면서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남자현은 곧바로 서로군정서에 가입하여 군자금 모집, 독립운동가 옥바라지 등으로 만주 지역 독립운동의 대모로 불리게 되었다.

만주 지역 무장 독립운동 단체의 통합을 추진할 때 참가했으며, 무장 투쟁이나 테러 위주의 독립운동을 적극 후원하고 참여했다. 한국 내에는 두 차례 잠입했다. 또한 1928년 만주 길림에서 김동삼, 안창호 등 47명의 독립 운동가들이 일본의 사주를 받은 중국 경찰에 검거되자, 지성으로 간호하며 석방 운동에 힘써 보석으로 풀려나게 했다.

1932년 만주국 수립으로 영국인 리튼이 이끄는 국제연맹의 조사단이 하얼빈에 오자 손가락을 잘라 흰수건에 '한국독립원(韓國獨立願)’이라는 혈서를 써서 조사단에 보낸 일화가 잘 알려져 있다. 1933년 주만 일본대사 무토노부요시를 살해하기 위해, 동지와의 연락 및 무기 운반 등의 임무를 띠고 걸인노파 차림으로 하얼빈 교외를 지나갔다. 그러나 밀정의 밀고로 2월 27일, 하얼빈에서 일본 경찰에 붙잡혔다. 6개월동안 온갖 혹독한 형을 받다가 단식투쟁을 전개하고 보석으로 석방되었으나, "독립은 정신으로 이루어지느니라."라는 말을 남기고 하얼빈에서 세상을 떠났다.

[출처] https://ko.wikipedia.org/wiki/남자현 발췌 및 편집

시린 에바디 Shirin Ebadi

시린 에바디(1947년 6월 21일~ , 페르시아어: شیرین عبادی)는 이란의 변호사이자 인권 운동가이다. 2003년 12월 10일, 에바디는 첫 이란인이자 첫 무슬림 여성으로서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였다.

시린 에바디는 1947년 6월 21일 이란 하마단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시의 공증인이자 상거래법 교수인 모하메드 알리 에바디이다. 가족들은 1948년 테헤란으로 이사했다.

1965년 테헤란 대학교의 법학과에 입학하고, 1969년에 졸업한 후 바로 사법 고시에 응시했다. 그는 6개월의 인턴 생활 후 1970년 3월 법관직을 시작했다. 그동안 그녀는 테헤란 대학교에서 공부를 계속했고, 1971년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75년에 그녀는 입법부를 주관하는 최초의 여성이 되었다.

1979년 이란 혁명 후, 보수적인 성직자들이 여성이 판사가 되는 것을 엄금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그녀가 관리하던 부서에서 비서직으로 계급이 떨어지게 되었다. 그녀와 다른 여성 판사들은 저항했으며 비서보다는 높은 "법 전문가" 직에 배당되었다. 결국 이 상황은 변하지 않은 채 조기 퇴직을 요청하게 되었다. 그녀의 퇴직요구가 반복적으로 거절됨에 따라, 이미 법률 사무실 허가가 났음에도 불구하고 1993년까지 변호사로서 활동할 수 없었다.

그녀는 이 남는 시간을 책을 쓰거나 그녀를 널리 알리게 했던 이란의 정기 간행물에 많은 기사를 쓰며 보냈다. 현재까지 변호사로 인권운동가로 활동하고 있다.

[출처] https://ko.wikipedia.org/wiki/시린_에바디 발췌 및 편집

해리엇 터브먼 Harriet Tubman

해리엇 터브먼(Harriet Tubman, 본명 Araminta Ross, 1822년 3월 ~ 1913년 3월 10일)은 노예 해방 운동을 실천한 인권운동가이자 남북 전쟁 당시 활동했던 노예 폐지론자이다.

메릴랜드주 도체스터군에서 태어난 터브먼은, 수많은 주인들에 의해 구타당하고 채찍질 당하였다. 어릴 적, 그는 화난 노예 주인이 다른 노예에게 던졌던 철 아령에 실수로 맞아 머리에 상처를 입었다. 상처로 인해 그는 평생 발작, 두통, 수면과다에 시달렸으나, 대신 꿈을 생생하게 꾸게 되었다. 독실한 기독교인인 그는 생생한 꿈을 하나님이 계시한 징조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노예주인으로부터 탈출 후, ‘지하철도’라는 반노예 운동가 네트워크와 아지트를 통해 해방 시설 열세 곳을 세워, 노예 칠십여 명을 구하였다. 1849년 터브먼은 필라델피아로 도망쳤다가, 바로 메릴랜드로 그의 가족을 구해내기 위해 돌아왔다. 천천히, 한 번에 한 그룹씩, 그는 자신의 친척들을 주 밖으로 데리고 나갔으며, 결국 수십 명의 노예에게 자유를 찾아주었다. 해리엇은 1850년부터 1860년까지 '지하철도'의 차장으로서 남부에 들어가 300명이 넘는 흑인들을 북부로 탈출시켰다. 아주 은밀하게 밤에만 움직였던 터브먼은 한 번도 실수한 적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그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탈출할 수 있었고, 심지어 그들을 돕는 게 해리엇 터브먼인 것은 아무도 몰랐다. 도망노예법이 제정 됐을 때에는, 도망친 노예들을 캐나다까지 갈 수 있게 도와주었으며, 그들에게 직업을 찾아주어 정착을 돕기도 하였다.

남북 전쟁 발발 후, 터브먼은 연합군을 위해, 처음에는 요리사이자 간호사로, 그 다음은 무장 정찰병이자 간첩으로 활약하였다. 전쟁에서 탐험대를 이끈 첫 여성이 된 그는, 콤바히강을 습격하여 700명이 넘는 노예들을 자유롭게 해주었다. 전쟁이 끝난 후 뉴욕주 오번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 자신의 노부모를 돌봤다. 병 때문에 편히 움직일 수 없게 될 때까지 그는 여성 참정권을 위해서도 열심히 싸웠으며, 이후 자신의 도움으로 세워진 흑인 양로원에 들어가 여생을 보냈다.

[출처] https://ko.wikipedia.org/wiki/해리엇_터브먼 발췌 및 편집

A Room of One's Own 자기만의 방 - 버지니아 울프 Adeline Virginia Woolf

'자기만의 방'은 버지니아 울프의 강연 주제인 ‘여성과 픽션’의 의미에 대한 고찰로 시작한다. 여기서 울프는 ‘픽션’이라는 개념을 여성이 어떠한 존재인가, 여성이 쓴 픽션, 그리고 여성에 관해 쓰인 픽션으로 분류하고, 이후의 각 장에서 이 세 가지 개념의 역사적 의미를 고찰하며 성과 글쓰기에 관한 사유를 발전시킨다. 하지만 글의 초반부터 울프는 여성이 글을 쓰기 위해서는 돈과 자기만의 방, 즉 독자적인 수입과 독립적인 공간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제시하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이 에세이는 그 결론에 이러게 된 사고의 궤적을 구체적으로 드러내 보임으로써 독자들이 상상의 경험에 동참하도록 유도한다.

울프는 여성이란 어떤 존재인가라는 물음의 답을 찾기 위해 대영박물관을 찾지만, 거기서 발견한 것은 “여성이 아닌” 남성들이 여성에 관해 무수히 많은 책을 썼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여성이 “어떤 교육을 받았는지, 글 쓰는 법을 배웠는지, 자기만의 방이 있었는지, 스물한 살이 되기 전에 아이를 낳은 여자는 얼마나 되었는지”를 알기 위해 책들을 뒤지지만, 어디서도 그에 대한 기록을 찾지 못한다. 그리하여 결국 셰익스피어에게 주디스라는 누이가 있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지를 상상으로 구성하기에 이른다. 그 상상 속에서 주디스는 글을 쓸 재능이 있었음에도 단 한 줄의 글도 쓰지 못한 채 젊어서 죽어 코끼리 동물원 맞은편의 버스정류장에 묻힌다. 이러한 상황은 제인 오스틴과 에밀리 브론테를 제외하면 19세기의 여성 작가들도 문 안에 갇혀 분노와 경련으로 뒤틀린 작품을 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울프는 “자신이 여성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린 여성으로서” 글을 써야 분노와 항의로 얼룩지지 않은 글쓰기가 가능하리라는 희망을 내놓는다. 이는 두 성이 화합해야 한다는 즉, 남성성과 여성성이 융합된 양성적 마음을 가질 때라야 비로소 마음의 온 기능을 온전히 발휘할 수 있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그것은 여성 안의 남성성을, 그리고 남성 안의 여성성을 억압하지 않은 ‘자신’을 찾는 것과 같으며, 이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것이다.


‘나는 남성의 동료라든가 남성과 대등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고귀한 감정을 찾을 수 없고 더 높은 목적을 위해 세상에 영향을 끼치려는 생각도 없습니다. 나는 그저 다른 무엇이 아닌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 훨씬 중요한 일이라고 간단하게 그리고 평범하게 중얼거릴 뿐입니다.’


자기만의 방은 남성과 여성의 대결 국면을 조장하자는 것이 아니라 ‘인간 정신이 경계를 넘어서 다양성으로부터 통합성을 만들 수 있는’ 시대를 지향하는 것이다. 따라서 울프가 제기하는 문제들은 단지 여성의 권리 문제에 머물지 않고, 가부장적 가치와 자본주의 및 파시즘을 비롯한 문명에 대한 비판으로 읽을 수 있으며, 인간 삶의 내적, 외적 세계를 아우르는 하나의 세계, 하나의 생명을 발견하는 총체적 비전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출처] 버지니아 울프(2006). 《자기만의 방》. 민음사 출판사 서평 中 발췌

제인 애덤스  Jane Addams

제인 애덤스(Jane Addams, 1860년 9월 6일 ~ 1935년 5월 21일)는 미국의 사회 운동가로, 1931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1860년 일리노이주 시더빌에서 태어났으며 1881년 락포드 대학을 졸업했고 1889년에는 시카고에서 자신과 절친인 엘렌 게이츠 스타와 함께 미국 최초의 정착 시설인 헐 하우스(Hull House)를 설립했다. 헐 하우스는 1주일에 최고 2,000명을 수용할 수 있었으며 성인을 위한 야간 학교와 유치원, 어린이 클럽, 자선 식당, 미술관, 카페, 체육관, 수영장, 제책소, 음악 학교, 연극단, 도서관, 작업장 등을 갖춘 대규모 시설이었다.

1915년에는 국제 여성 평화 자유 연맹 이사장으로 선출되었으며, 1931년 카네기 국제평화재단 이사장이었던 니컬러스 머리 버틀러와 함께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출처] https://ko.wikipedia.org/wiki/제인_애덤스 발췌 및 편집

로제타 셔우드 홀  Rosseta S. Hall

로제타 셔우드 홀(Rosetta Sherwood Hall, 1865년 9월 19일 ~ 1951년)은 의료 선교사이며 교육자이다. 여성의과대학으로서는 세계 최초로 1850년에 설립된 미국 필라델피아 드렉설 대학교 의과대학(옛 펜실베니아 여자의과대학)을 1889년 3월에 졸업하였고 1890년부터 조선 최초의 여성전문병원인 보구여관에서 이화학당 학생 5명에게 의학교육을 시작하면서 후학을 양성했다. 보구여관은 1892년 동대문 근처에 보구여관의 분원을 설치했으며, 1909년에는 이 자리에 현대식 최대 규모의 병원을 세웠는데 이것이 이화의대 부속병원의 모체가 되었다. 조선 최초의 양의(洋醫)이자 여의사로 에스더 박(김점동)을 미국 유학 지원을 통해 성장시켰다. 메리 스크랜턴(Mary F. Scranton)이 설립한 이화여대 의료원에서 의료사역에 힘쓰며 43년간 조선 여성의 건강권 보장에 선구자 역할을 하였다. 평양맹아학교(平壤盲啞學校)를 설립하는 등 평양에서도 많은 활약을 하였다.

[출처] https://ko.wikipedia.org/wiki/로제타_셔우드_홀 발췌 및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