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송** (7569)

T&C APoV 후기 공모 

<Bias, by us> 컨퍼런스를 마치고


나는 교사다. 아이들을 만나는 교사다. 코로나 전에도 아이들을 만났고, 코로나 이후에도 아이들을 만나고 있다. 


코로나 전에도 아이들의 삶이 걱정되었었고, 코로나 이후에는 더욱더 아이들의 삶이 걱정되고 있다. 교사들을 만나다보면 어느 지역의 아이들을 만나는지에 따라 각자 걱정과 반응이 다르다. 학부모들을 만나더라도 반응이 다 다르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않아서 오히려 학교폭력이 줄어들어, 조용했던 아이들이 더 잘 지내고 있다는 사람들도 있다. 주변에 수업을 방해하는 친구들이 없다 보니 아이들이 온라인 학습을 오히려 즐거워한다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지만 나는 아이들이 혹시 굶지는 않고 있을지, 혼자 집에서 방치되어 혐오가 가득한 유튜버들을 보며 낄낄거리고 있지는 않을지, 너무나 외로워서 성매매의 유혹에 빠지지는 않을지 그러한 걱정이 가득했다.


왜냐하면 코로나 전에도 아이들의 삶은 그러했으니까. 

코로나 전에도 아이들의 삶은 외로웠고 고독하다고 느꼈으니까.


아이들의 삶은 왜 외롭고 고독할까?


미디어에서는 얼짱 몸짱의 사람들이 나오고, 황홀한 집들이 나오고, 바로 옆에는 으리으리한 아파트들이 세워지고, 우리 부모님은 밤늦게까지 일하시고, 주말엔 어디 놀러 가기가 어렵고, 난 집에 혼자 폰으로 게임을 하거나 유튜브를 보고. 친구들과 시시껄렁한 대화를 하고, 웹툰을 보고. 배가 고프면 과자나 엽기떡볶이나 불닭볶음면을 먹고, 저녁밥은 부모님이 드시는 야식을 10시쯤 먹고. 규칙적이고 영양 잡힌 식사를 하지 못해서 피부는 안 좋고 소아비만은 많아지고. 입시를 통해 계층사 다리를 올라가야 하는데 학교에서 말하는 말들은 하나도 못 알아듣겠고, 나는 해봤자 잘하는 것 하나도 없고 공부도 그림도 체육도 미술도 다 못하고, 꿈도 없고 되고 싶은 것도 없고, 이번 생은 망했고.


누구네 학교에 어떤 선배가 있는데 그 사람 사진은 멋지고 잘생겼고 예쁘고 댓글도 많고 좋아요도 많고. 내가 올리는 글에는 아무도 댓글 달지 않고 신경 쓰지 않고.


나중에 래퍼가 되거나 유튜버가 되기 위해 이 영상 저 영상 보는데 좀 싫은 것들도 있고, 재밌는 것들도 있어서 따라 하는데 샘들은 하지 말라고 하고. 랩 연습을 좀 해봤는데 전혀 이건 아닌 것 같고.


이 모든 건 그냥 나의 추측일 뿐이다. 

어른인 나의 시선으로 볼 때 이 세상은 혐오로 가득하고, 그중에서도 사람들은 특히 약자를 혐오하고, 멸시를 하기 때문에. 이유는 다음과 같다.


왜냐면 첫째로 세상은 아이들을 경쟁시키니까. 

아이들을 경쟁에 몰아넣고 한 시간 수업 중에 교과서 양을 따라오지 못하면, 다음 시간에는 하나도 못 알아듣게 교육과정에 짜여 있으니까. 마치 구구단을 알지 못하면 수학 시간에서 그다음 곱셈, 나눗셈 등 뒤이어 오는 말들을 하나도 못 알아들으니까. 매시간의 수업은 그 양을 다 끝마쳐야 한다. 특히 단계형 교육과정인 수학과 영어는 특히 그렇다. 수학과 영어가 아니어도, 모든 과목들이 한 시간 분량이 이미 많다. 게다가 치유가 필요한 학생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서 수업 시간에 활동을 '제대로' 하기가 어렵다. 사교육에서 교과서의 뒤처짐과 복습들을 감당하고 있는데, 이 틀을 바꾸려면 입시를 없애야 하는데, 아무도 못 없애고 있으니까 답답하다. 그것은 아마도 사교육과 입시는 기득권을 위한 돈과 권력이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각종 범교과 학습 주제들이 사회 이슈들이 생겨날 때마다 교육과정에 넣으라고 말하고 있다. 안전, 환경, 인권 등 안 중요한 것은 없다. 사회 이슈가 있을 때 그 모든 책임이 교육을 했냐, 안 했냐로 책임소재가 판가름 나니까 교사들은 더욱 압박을 느끼고 시간이 짧다 보니 해내야 하는 교육들이 수박 겉핥기 식으로 수십 개를 해야 한다. 그래서 수업시간에 아이들의 치유와 발달을 돕기보다는 필수로 교육해야 하는 것들을 학습시켰는지에만 급급하다. 각종 평가들도 학생들의 치유와 발달보다는 입시에 초점이 맞춰질 뿐이다. 교육이 목적이 무엇인가? 

코로나 상황 속에서도 아이들이 잘 살고 있는지, 묻기보다는 온라인 학습을 잘 마쳤는지에 하루하루 바쁘게 확인하느라 시간이 다 간다. 교사들이 전화상담 등으로 아이들의 삶을 살피고는 있지만,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아이들이 느끼기엔 세상은 경쟁만을 원하고 우리의 삶에는 관심이 없다고 느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이는 모든 학생들로 하여금 치유가 필요한 학생들을 혐오하게 만드는 약자 혐오와 각자도생, 경쟁을 공고히 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두 번째로는 세상은 아이들의 가족을 욕하고, 고로 즉 아이들 자신을 욕하니까. 

사람들은 코로나 전에도 미세먼지가 중국 탓이라고 댓글을 달았었다. 실제가 중국 탓이든지 아니든지, 중국 꺼져라라는 댓글을 보는 아이들 중에는 가족이 중국인인 경우들도 많다. 우리나라 아이들 중에는 '순수'한 '한국'인인 경우는 별로 없다. 부모님도, 할머니, 할아버지도 중국인, 베트남인, 필리핀인인 경우가 이미 아주 많은데, 아이들이 그러한 말들을 보다 보면 결국에는 자기 자신이 부정당하는 느낌을 받게 된다. 내가, 또는 내 친구가 세상으로부터 아무 잘못이 없는데 인종만으로 악플을 받게 된다면, 나는 어떤 느낌이 들까? 혐오사회 책에서도 나왔듯이 혐오는 혐오를 낳고, 혐오가 있는 사회는 안전하지 않은 사회, 나도 언젠가 공격받을 수 있는 사회, 즉 불안한 사회, 내가 힘을 가지려면 먼저 타인을 혐오해야 한다는 악순환이 생긴다.


세 번째로는 어른들은 아이들의 삶에 관심이 없으니까. 

사회가 정말로 양극화되어, 가정 가정마다 살기가 참 팍팍하고 고난스럽다. 아이들을 맡길 데도 없고 아이들은 집에서 부모를 기다리며 밤 시간을 보내고, 부모들은 밤 열시 열한 시나 새벽에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오고, 아이들은 새벽 1시에도 잠을 잔다. 아홉 살, 열 살 아이들이 새벽 12시, 1시에 잔다고 생각해 보라. 그 아이들이 건강한 세대가 될 수 있을까? 공부에 쪼임을 당하는 아이들도 새벽 1시쯤에 잔다는 말을 들었다. 열 살 아이들이 수학의 정석을 한번 떼야 서울대를 갈 수 있다고 들었다. 아홉 살에 교과서에서 구구단을 배우는데, 어떤 아이들은 수학의 정석을 공부한다니, 이것이 정상인가? 그 아이들의 마음이 과연 괜찮을까? 얼마나 외롭고 치열하고 졸렬하고 치사할까. 정석을 공부하는 정상이 아닌 환경에서 네가 미래에 '정상' 적으로 살기 위해선 지금 더 공부해야 하는 것이 정상이야...라고 설득하는 것이 얼마나 비정상인가. 그 어른들을 보면서 아이가 얼마나 외로울것인가. 

노동시간을 단축하자, 최저임금을 인상하자, 비정규직을 철폐하자 수없이 거리에서 온라인 서명에서 외치지만, 해결이 되지 않는다. 그 시간 동안 아이들은 방치된다. 아이들이 매일 하는 일은 유튜브를 보거나 게임을 하는 일인데, 어떤 유튜브를 보는지, 어떤 게임을 하는지, 이야기를 듣지 않는 것. 물어보지 않는다. 그 와중에 어른들이 격려라도 해주면 다행이건만, 아이들에게 소리를 지르거나 짜증을 부리거나 기대며 못난 어른이 된다. 못난 짓을 했다면 사과를 해야 할 텐데, 정치인부터도, 어른들부터도 먼저 사과하지 않는다.


이쯤 되면 왜 아이들이 혐오와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는 환경인지 알 수 있다. 이를 바꾸려면 최인철 교수가 말한 것처럼, 지나친 집단 정체성을 경계하고, '보편적 인류애'가 필요하다. 시작은 어른들부터, 사회 분위기를 바꾸고 교육도 바뀌어야 한다. 유튜브도 바뀌고 미디어 댓글들도 바뀌어야 한다. 경쟁에서 뒤처진 아이들, 사람들에게도 온정 어린 댓글을 주고, 중국인이든 일본인이든 필리핀인이든 흑인이든 피부색과 인종에 상관없이 그들을 평가하거나 비난하지 않아야 한다. 방치된 아이들, 공부에 쪼이는 아이들의 삶에 어른들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 성적이 좋은 아이들만 우리 편이 아니라, 아이들 한 명 한 명, 그 아이들이 설사 문제행동을 일으키는 아이들이라도, '보편적 인류애'를 발휘해야 한다. 아이들도 사람이고, 게다가 우리의 보호와 교육이 필요한 '아이'들이니까.


또한 분류를 하지 않아야 한다. 혐오의 시작이 분류라니, 충격적이었다. 최호근 교수의 홀로코스트 강의에서 말했듯, 내 집단과 외 집단을 '분류'하는 것부터 혐오가 시작된다. 문제행동을 하는 아이이든 아니든, 돈이 많은 지역의 아이이든 아니든, 성적 지향이 어떻든, 장애, 비장애이든, 인종과 성별 관련 없이... 우리가 수없이 인권 선언 등에서 보아왔던 각종 차별에서 벗어나려면 '너는 나랑 달라, 어머, 쟤는 왜 저래'에서 벗어나, 'A도 사람이고 a도 사람이고 b도 사람이고 z도 사람이고...'이렇게 모두 사람이다라는 인식을 머릿속에 박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 모두 마음속에서 홀로코스트의 살인의 외주화를 한 것처럼, 무의식적인 혐오와 살인을 저지르고 있을지 모를 테니 말이다.


개인적으로 나부터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위주로 구별짓고, 그들과만 카톡하고, 그들과만 밥을 먹고, 그들과만 소통을 하는 방식이 나와 좀 멀리 있는 그룹들을 멀리한 것은 아니었는지. 그들이 느끼기엔 분류'당했다'라고 느끼진 않았을지. 나도 모르게 그들을 무의식적으로라도 (작은 의미로) 혐오한 것은 아니었을지 반성했다.


세상에는 어떤 분류들이 있을까. 부동산과 주식시장으로 돈이 몰리고 있다는데, 같은 세상에 살고 있는데 정말로 남의 세상 말을 하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을 사람들이 있다. 어느 소상공인들은 작년 대비 90퍼센트 이상 영업이 감소했다고 하고, 수입이 0원이라고 한다. 돈에 있어, 다른 세상을 살고 있는 상황 자체가 나 스스로, 분류를 당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양극화를 극복할 방법을 세계 전문가들이 모여 함께 지혜를 모아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또 하나의 홀로코스트를 만들어 살인의 외주화를 하고 있는 톱니바퀴의 나사가 되어가고 있을 테니 말이다. 재난지원금을 받는 대상에 대한 논의에서도, 난민의 입국에 대해서도, 차별 금지법 에 대해서도, 샘 오취리의 인종차별 반대 발언에 대해서도, 우리의 시선에서 혐오를 걷어내야 한다. 학교폭력에 대해서도 치유와 발달의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전업주부가 긴급 보육을 왜 보내?'라는 시선이 아니라, '보낼 만하니까 보냈겠지.'하며 존중해 주고, 보편적인 인류애로 바라보아야 한다.


분류라는 것은 인간의 당연한 본성 아닌가 싶을 수도 있지만, 우리가 교육을 통해서 각종 인권 감수성을 기르고, 이를 통해 공감을 할 줄 알며, 내 집단 안에서만의 단순한 공감이 아니라, 보편적 인류애적인 공감을 해야 한다. (내가 속한) 순수한 대한민국, 백의민족 사람만 사람이다에서 벗어나, 그 사람, 그 흑인, 그 성소수자, 그 장애인, 그 빈민도 사람이다로 관점을 넓혀야 한다.


코로나로 인해 돌봄이 해체되고 가정이 해체되고 직업을 잃고 소득이 0원이거나 마이너스인 경우들이 많아지고 있다. 그 가정의 수많은 아이들, 청소년들은 그대로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다. 외로운 아이들은 뭘 할까? 뭘 할 수 있을까? 어떻게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

교사로서, 어른으로서, 먼저 태어난 세대로서, 우리는 뭔가를 해야 한다. 그리고 적어도 혐오는 하지 말아야 한다. 적어도 구별짓고 분류는 하지 말아야 한다. 혐오 댓글, 혐오 유튜버들을 신고해야 한다. 혐오 미디어를 바꿔야 한다. 혐오 문화를, 혐오사회를 바꿔야 한다. 아이들, 어른들, 사람들 가슴속에 이미 박혀있는 송곳들을 빼내고, 치유의 빨간약을 발라줘야 한다. 온기로, 보편적인 공감으로, 내 집단 아니라, 모든 '너, 그, 그들' 에게로의 공감을 다 같이 해야 한다. 그리고 적어도, 홀로코스트와 나치를 생각하며, 혐오표현을 하는 정치인은 반드시 낙선시켜야 한다. 그리고 포괄적 차별 금지법을 통과시켜야 한다. 그게 우리 어른의 의무다.


✻ APoV 컨퍼런스는 비영리 목적의 교육용으로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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